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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묵상] 느헤미야7:5-73절 매일성경묵상

마침, 나는 일차로 돌아온 사람들의 가족별 등록부를 찾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5절)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지만 그 성 안에는 인구도 적었고 살 집도 별로 없었다. 이제는 그 넓은 성읍에 사람들을 채워야 했다. 그러나 아무나 그 성읍에 사람들을 채울 수는 없었다. 구별된 주의 백성들만 그 성에 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약 90년전의 1차 포로 귀환 때 작성되었던 가족별 등록부를 찾았다. 그 등록부에 기록된 가족들이 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것이다.

지난 주일 기도회 때 교우들을 위한 기도를 잠시 하였다. 참석한 교우들이 각자 기도하고 싶은 교우들의 이름을 이야기하였다. 그 중에는 교회 모임에 안나온지 꽤 오래된 교우들도, 그리하여 일상의 기억에서 잠시 뒤로 물러난 교우들도 있었다.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를 했다. 이번 주간에는 그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느헤미야 묵상] 느헤미야6:15-7:4 매일성경묵상

성벽 공사는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났다.(6:15절)
그래서 그들은 기가 꺾였다.(6:16절)

지독한 방해가 있었다. 안과 밖에서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사마리아의 방해, 주변 민족들의 방해, 내부의 배신, 백성들의 사기 저하,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공동체의 위기, 느헤미야를 죽이고자 하는 모략등의 여러 가지 방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시작한 지 오십이일만에 성벽이 완공되었다. 유다 백성뿐만 아니라 방해 세력들도 결국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벽이 완공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기세등등하게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그들의 기가 꺾였다.

어제 기도회를 했다. 성벽을 재건하는 것(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과 관련된 기도제목들이 나왔다. 주님의 도움으로 성벽이 재건된다면, 결국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어제의 기도제목을 기억해서 매일 기도를 해야겠다.

유다에는 그와 동맹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6:18절)

하나님의 크신 도움으로 성벽을 재건하였다. 심지어 방해세력들도 하나님의 도움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큰 일을 배신하고 반대세력과 손을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다의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느헤미야의 적대자인 암몬 사람 도비야와 친교를 나누었고 심지어 결혼관계로 맺어진 귀족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귀족들은 도비야에게 느헤미야의 행적을 알렸고, 도비야는 그 힘으로 느헤미야에게 협박 편지를 자주 보냈다.

성벽 재건은 이루어졌지만 그 성벽 재건이라는 형식에 채워야 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내용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성벽 재건을 끝낸 느헤미야의 할 일은 아마도 이들에 대한 청산일 것이다.

나의 아우 하나니와 성채 지휘관 하나냐에게 예루살렘 경비를 맡겼다. 하나냐는 진실한 사람이고, 남다르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7:2절)

성벽 재건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적들은 사방에 있었기에 이제는 예루살렘을 적들로부터 지켜야 했다. 성문을 최소한으로 열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경비를 책임지게 하였다. 즉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입교자 공부가 교회 공동체의 내용을 채우는 작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교회의 모임이라는 형식안에 거룩한 주의 백성들을 세우는 작업이기를 기도한다.

[느헤미야 묵상] 느헤미야5:6-19절 매일성경묵상

5장 1절부터 시작되는 단락이다.

포로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그 땅에서 계속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했다.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자유의 몸으로 고향에 왔는데, 고향에서 노예로 전락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아들 딸들을 노예로 팔아야 하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아우성은 늘어만 갔다.

이유는 부자들, 권력자들의 돈놀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동족들을 대상으로 비싼 이자 놀이를 하면서 동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느헤미야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분노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느헤미야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분노로 성급하게 나서지 않는다. 느헤이먀는 신중하게 상황을 살핀다. 그리고 귀족들과 관리들을 불러서 엄중하게 야단쳤다.

동족들을 대상으로 돈놀이를 하면서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당장 이자놀이를 그만두고 모두 돌려주어야 한다. 느헤미야는 한치의 양보나 타협, 혹은 머뭇거림 없이 단호하게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그들은 느헤미야의 말을 듣는다.

이들이 느헤미야의 말에 순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느헤미야의 삶 때문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유다의 총독으로서 유다 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상당한 양의 녹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십이년 동안 총독으로 있으면서 단 한 푼의 녹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의 총독들은 상당한 양의 세금을 거두어서 백성을 착취하였지만 자신은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자신과 식솔들이 먹는 음식의 양도 상당했기에 그것으로 만족했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녹을 받았다면 백성들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걱정한다.

이 나라의 부자들과 지도자들을 생각해 본다. 참 나쁜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나님 두려운 줄 몰라서야...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을 왜 이토록 외면할까.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집과 재산을 이렇게 다 털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런 자는 털리고 털려서, 마침내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13절)

[느헤미야 묵상] 느헤미야4:15-5:5절 매일성경묵상

하나님이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셨으므로(15절)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비밀스런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들의 비밀스런 계획이 이스라엘 진영에 노출되었기에, 느헤이먀는 백성들에게 경계를 철저하게 할 것을 명령한다. 반은 일을 하고 반은 무기로 무장하고, 일을 하더라도 한 손으로는 짐을,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게 하고, 일꾼들도 허리에 칼을 차게 하고, 나팔수를 항상 준비하여 긴급한 상황에 대처토록 한다. 밤에도 경계를 섰고,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옷을 벗지 않았고, 물을 길러갈 때에도 무기를 들고 다녔다. 이렇게 철저하게 방해 세력들의 계획을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방해자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하나님이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느헤미야와 그 백성들이 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철저하게 대비하였고, 그 결과 적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는데,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이 저들의 음모를 헛되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진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진다. 역으로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보살펴 주심이 없다면 그 최선은 헛된 것이 된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물을 길러 갈 때에도 무기를 들고 다녔다.(23절)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변을 살피며 주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 그렇다. 세상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금방 낚아채간다.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휩싸여 갈 수 있다. 매일 매일 자신을 살피며 말씀으로 자신을 정련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느헤미야 묵상] 느헤미야4:1-14절 매일성경묵상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9절)

방해자들의 방해가 집요하다. 분개하며 화를 낸다. 비웃고 빈정거린다. 공격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헛소문을 퍼뜨린다. 그들의 목적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유다 백성들을 두렵게 해서 혼란에 빠뜨리고, 성벽 재건을 중단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도는 일정 부분은 성공했다. 유다 백성들 사이에 성벽 재건을 의심하는 노래가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방해자들의 지독한 공작에 넘어지지 않고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는, 하나님에게 의지한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정작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둘째는, 경비병을 세워서 밤낮으로 성벽을 지킨다. 적들의 공격이 있는지를 밤낮으로 살피도록 한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세워 나갈 때 이런 지독한 방해들은 항상 있다. 경쟁적 삶의 방식을 지혜라고 떠들어대면서 자기죽음이라는 삶의 방식을 업신여긴다.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하면서 꼬드긴다. 그래서 때로는 혹 넘어가서 '정말 이렇게 살다가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를 운영해 나갈 때도 이와 같은 유혹이 있다.

이럴 때,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공동체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는 것,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이번 주일 오전 기도회를 잠시 떠올려 본다.

둘째는 밤낮으로 지키는 것이다. 마음을 지키고, 교우들을 살피며, 교회 나눔의 흐름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혹시라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본다. 교회의 나눔에서 세상의 잣대와 기준들, 관심사가 주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주된 것인지를 살펴야겠다. 이번 주일 나눔부터 힘을 쏟아야겠다.
 

자유 툭톡

자유로운 사람일수록 기본적인 가치관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뿌리가 깊으면 깊을 수록 자유롭다. 뿌리가 깊지 않은 자유로움은 평안을 주기보다는 불안을 줄 뿐이다.

[느헤미야 묵상] 느헤미야3:1-13절 매일성경묵상

성벽 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한 구간 완성하고, 그 다음 구간 완성하는 식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곳곳에서 성벽 재건이 이루어진다. 아마도 이렇게 했던 이유는 방해자들의 집요한 공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벽 재건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면 방해자들의 공격에 계속 노출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성벽 재건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느헤미야는 신속하게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성벽 재건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여 52일만에 성벽 재건을 마친다.

신중함과 머뭇거림은 다르다. 예레미야는 신중했지만 머뭇거리지는 않았다. 성벽 재건을 위한 예레미야의 준비는 매우 신중했지만, 그 시행은 즉각적이고 과감하며 신속했다. 간혹 신중한답시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머뭇거림은 게으름이다. 혹시 나에게 그런 머뭇거림은 없는지 돌아본다.

성벽 재건은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제사장, 성전 막일꾼, 향품제조업자, 세공장이, 상인들, 아들과 딸들, 각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성벽 재건의 결정적인 공로자는 없다. 모두가 공로자이다. 어느 특정 사람들이 성벽 재건을 주도적으로 끌고가지 않았다. 모두가  맡은 역할을 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한다. 결정적으로 공로를 세운 사람은 없다. 모두가 공로를 세운다. 특정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의지한다. 교회는 이렇게 운영되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이나 프로그램도 모두의 주도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교회가 그리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느헤미야 묵상] 느헤미야2:11-20절 매일성경묵상

느헤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이유를 곧바로 밝히지 않는다. 우선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 폐허가 된 성문들을 직접 살펴 보았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이 사실인지를 자신의 눈으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의 관리들을 모아 자신이 돌아본 예루살렘의 형편을 이야기한다. 관리들이라고 몰랐을까.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의 폐허는 관리들도 직면하기 힘들었던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문제를 직접 꺼내놓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돌본 일과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를 관리들에게 전한다. 그제서야 관리들은 성벽 재건 공사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성벽 재건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되었어도 방해자는 있었다. 이들은 성벽 재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업신여기고 비웃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이들과 적당한 타협도 하지 않는다. 방해하지 않으면 약간이라도 차지할 몫을 주겠다고 회유하지 않는다. 이들과는 타협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경솔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있는 사명감만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현실을 철저하게 살폈고, 예루살렘 관리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였다. 방해자들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넘어가지 않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선하신 손 길이 함께 했다. 이런 모든 것이 갖추어진 후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시작된다.

분별력, 주변을 살피는 세심함, 때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등이 느헤미야의 덕목인 듯 하다. 그의 지혜는 허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발을 땅에 닿은 지혜이다. 이런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를 해야겠다.


[에스라 묵상] 에스라9:1-8절 매일성경묵상

하나님, 너무나도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하나님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6절)

유다 땅에 도착한 백성들 중의 일부가 이방 사람과 혼인관계를 맺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지도자와 관리들이 앞장섰고,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중에서도 이방 사람들과 혼인관계를 맺는 일이 일어났다.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깊은 탄식과 슬픔으로 넋을 잃을 정도였다. 일부 유다 백성의 행동은 이전 조상들이 범한 죄를 다시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 죄 때문에 유다 백성이 심판을 받아서 포로로 잡혀갔는데, 이제 잠시 해방된 틈을 타서 다시 옛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돌아가니 에스라는 기가막힐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에스라의 감정은 수치감이었다. 그는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한다. '죄악'에 대해서 단지 '벌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공포가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치감'을 갖는 것이 보다 더 성숙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수치심, 낯뜨거움은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을까.

모두가 그런 죄를 저지르는 않았다. 유다 백성 중에서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였고, 이들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모였다. 에스라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하나님께 통회와 참회의 기도를 드린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우면 그것을 인정하고 자복해야 한다. 숨지 말고 고백해야 한다.


[에스라 묵상] 에스라8:21-36절

보병과 기병을 내어 달라는 말은 부끄러워서 차마 할 수 없었다.(22절)

바빌로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꽤 오랜 세월을 들여야 하는 험난한 여행이다. 아무리 페르시아 제국이 패권을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지역적인 위험은 늘상 있었을 것이다. 도적떼들이 여행객이나 무역상등을 공격하여 재물을 탈취하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에스라는 귀환 준비를 다 마친 후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금식을 선언하며 주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기도 내용은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수많은 재물을 가진 여행객은 도적떼들의 표적이 되기 쉽상이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군사를 내어달라고 할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고 큰 소리를 쳐 놓은 상황에서 이런 말은 못했다. 부끄러워서 차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에스라도 귀국길의 안전이 상당히 염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염려로 인해 구질구질하게 신앙을 뭉개버리지 않는다. 소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신앙고백과 모순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도 '차마 부끄러워서'이다. 자신의 신앙고백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신앙인이다. 어쩌면 에스라는 귀국길의 안전을 확신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군사를 내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라고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 때문이었다.(물론 확신이 없었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어떻게 보면 신자는 세상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

가는 길에 매복한 자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잘 보살펴 주셔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31절)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해서, 혹은 하나님이 보호하셨다고 해서 위기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없어진 것이 신자의 삶이 아니라 그 고난과 위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그의 백성이 망하지 않고 보호받는 것이다. 오늘 당하는 고난, 혹은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보살펴 주심을 의심하지 않겠다. 오히려 하나님의 보살펴 주심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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